순서를 매기는 일이 거버넌스가 될 때

데이터를 모으지 않고 순위를 함께 배우는 DeFiRank가 실제 거래 기록에서 진짜 기여를 가려내는 방식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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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Rank: Federated Pairwise Ranking for Governance in Decentralized Financial Networks는 arXiv에 공개된 논문으로 식별자 2610.12916을 달고 있다. 이 연구가 내세우는 주장은 하나로 요약되는데, 여러 기관이 각자의 거래 데이터를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은 채로도 기여자 순위를 함께 학습해서 거버넌스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원문 논문은 제목 아래에 걸린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패트릭입니다. 저는 이 논문을 처음 펼쳤을 때 제목보다 부제에서 오는 문제의식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순위라는 말은 검색이나 추천에서 자주 듣지만, 거버넌스라는 말과 붙는 순간 무게가 달라지니까요. 누구를 끌어올리고 누구를 끌어내릴지를 정하는 일이 모델의 출력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결정을 중앙에서 데이터를 다 모아서 내리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과연 어떤 구조가 있어야 할까요. 오늘은 그 질문을 처음부터 함께 따라가 보려 합니다.

이 논문을 제가 끝까지 읽게 된 이유

사람들이 거버넌스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투표 장면을 떠올리는데, 제가 먼저 떠올린 건 심사 회의실이었습니다. 밤늦게까지 거래 내역을 넘기면서 이 계정은 진짜인지, 저 활동은 과장된 건 아닌지를 따지는 회의 말이죠. 그런데 이런 회의가 한두 건이 아니라 네트워크 전체로 번지면 어떻게 될까요. 거래량이 치솟는 시기에는 검토해야 할 대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심사할 수 있는 사람의 시간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논문이 겨냥하는 지점이 기술보다 운영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논문이 전하는 출발점은 그래서 꽤 직관적입니다. 기존 탈중앙 금융 네트워크의 거버넌스는 사람의 손으로 직접 검토하는 위원회 방식에 기대고 있었고, 그 방식은 심사자의 주관이라는 편향과 물량이 몰릴 때 버티기 어렵다는 확장성 문제를 함께 안고 있었다는 것이죠.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주관이라는 말은 심사자가 불성실하다는 뜻일까요. 저는 그렇게 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실한 심사자일수록 각자 보고 있는 화면이 다르기 때문에 결론이 엇갈린다는 뜻에 가깝다고 봅니다. 어떤 기관은 특정 앱의 거래를 많이 보고, 다른 기관은 다른 상대방과의 거래를 많이 보니까요.

제가 이 대목에서 멈칫했던 건, 이 문제를 흔한 자동화 이야기로 풀지 않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단순히 사람을 모델로 대체하자는 제안이었다면 금방 식상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논문은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갑니다. 금융 거래 데이터는 기관 입장에서 외부에 내보내기 어려운 자산이고, 탈중앙이라는 이름에 맞게 흩어져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흩어진 채로 배우는 방법밖에 남지 않는데, 그때 순위라는 형식을 고른 선택이 꽤 영리하게 느껴졌습니다. 점수를 매기는 일보다 순서를 정하는 일이 거버넌스의 언어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직접 들여다볼 때 어디서부터 막힐까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다 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팀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 심사자가 각자 다른 거래 조각을 보고 한 네트워크의 기여도를 매길 때도 비슷한 일이 생길까요. 저는 생긴다고 봅니다. 심사자마다 자신이 자주 보는 패턴을 정상이라고 여기기 쉽고, 낯선 패턴은 의심부터 하게 되니까요. 이건 개인의 편견이라기보다 시야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거래량이 적을 때는 이런 차이가 회의에서 조율됩니다. 그런데 네트워크가 커지고 하루에도 수많은 제공자와 거래가 오가면, 회의는 병목이 됩니다. 검토가 늦어질수록 거버넌스 결정도 늦어지고, 늦어진 결정은 다시 네트워크의 신뢰를 갉아먹습니다. 특정 시점에 어떤 앱에서 거래가 폭증했다고 해보죠. 아침에는 멀쩡했던 심사 대기열이 점심에는 몇 배로 불어나고, 저녁 회의에서는 어제 기준과 오늘 기준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운영 측면에서 보면 이 지점이 가장 아픕니다. 기준이 흔들리면 결과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불만이 커지면 다음 심사는 더 조심스러워져서 더 늦어지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논문의 문제 제기를 점수 이야기가 아니라 시야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한 기관이 자기 화면만 보고 판단하면 전체가 보이지 않고, 전체를 보려고 데이터를 다 모으면 프라이버시와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며, 사람을 늘려서 메우려고 하면 주관과 속도의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죠. 이런 삼각형 안에 갇혀 있을 때, 어떤 학습 방식이 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논문은 그 답을 연합이라는 말에서 찾습니다.

여러 기관이 거래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고 순위 모델을 함께 학습하는 연합 구조도
여러 기관이 거래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고 순위 모델을 함께 학습하는 연합 구조도

왜 점수가 아니라 순서를 배우자고 할까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합니다. 기여도를 숫자로 매기면 되지 않나 싶으니까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점수는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하지만, 거버넌스에서 정말 필요한 건 누구와 누구 중에서 누구를 먼저 올릴지에 대한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92점과 87점의 차이가 실제 행동에서 무슨 뜻인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A 제공자를 B 제공자보다 앞에 둔다는 결정은 바로 실행으로 이어집니다. 승격과 강등, 노출과 제재 같은 말들이 전부 순서의 언어이죠.

제가 이 대목에서 흥미롭게 본 부분은 pairwise라는 선택입니다. pairwise ranking은 전체 점수표를 먼저 맞추려 하지 않고, 두 대상을 놓고 어느 쪽이 더 진짜 같은 기여인가를 묻는 방식입니다. 마치 심사자에게 무거운 채점표를 들이밀기보다 두 개의 파일을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더 설득되는지를 묻는 것과 비슷하죠. 이렇게 물으면 판단이 훨씬 안정됩니다. 절대 점수는 기관마다, 시기마다 흔들리지만, 상대적인 우열은 그보다 덜 흔들리니까요.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옵니다. 순서만 배우면 점수의 디테일을 잃는 것 아닐까요. 저는 그 걱정을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거버넌스에서는 디테일보다 일관된 순서가 먼저라는 것이죠. 누가 1등이고 누가 꼴찌인지가 흔들리면 아무리 점수가 정교해도 신뢰를 잃습니다. 반대로 순서가 안정되면, 그 순서를 가지고 예산과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논문이 pairwise라는 형식을 고른 건 그래서 기술적인 취향이 아니라 거버넌스의 문법에 맞춘 결정처럼 보입니다. 순서를 배우는 모델은 결국 결정을 배우는 모델이니까요.

데이터를 모으지 않고 어떻게 함께 배울까

좋은 건 알겠는데, 이걸 실제로 어떻게 학습시킬까요. 데이터를 한곳에 모을 수 없다는 전제가 있으면 일반적인 학습 파이프라인은 바로 막힙니다. 각 기관이 가진 거래 내역은 외부 반출이 어렵고, 그렇다고 각자 따로 배우면 전체 네트워크의 그림이 잡히지 않으니까요. 이때 등장하는 것이 federated learning이라는 발상입니다. 데이터를 옮기는 대신 모델을 옮기는 것이죠.

흐름을 따라가 보면 감이 옵니다. 각 기관은 자기 데이터를 자기 안에 둔 채로 로컬에서 순위 모델을 조금씩 업데이트합니다. 그러면 중앙에서는 각 기관이 보낸 업데이트, 그러니까 데이터가 아니라 배움의 방향만을 모아서 하나의 모델로 합칩니다. 다시 그 합쳐진 모델을 각 기관에 내려보내면 다음 학습이 시작됩니다. 생각해보면 사람도 비슷하게 배웁니다. 각자 현장에서 겪은 것을 메모로 들고 와서 회의에서 합치는 것과 비슷하죠. 원본 일지를 통째로 복사해서 돌리는 게 아니라, 거기서 얻은 교훈만 모으는 셈입니다.

저는 여기서 멈칫했습니다. 업데이트만 공유하면 정말로 프라이버시가 지켜질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논문이 말하는 바를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방식은 원본 거래 데이터를 직접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히 한 걸음 나아간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누출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모으지 않고 배우는 구조를 만들면, 기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깁니다. 참여가 늘면 모델이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면 순위의 근거가 두터워집니다. 연합이라는 말은 그래서 기술 용어를 넘어 참여의 조건처럼 읽힙니다.

점수 예측과 순서 학습의 차이를 보여주는 비교 다이어그램
점수 예측과 순서 학습의 차이를 보여주는 비교 다이어그램

진짜 활동은 어떤 흔적을 남길까

이제 모델이 무엇을 보는지로 들어가 보죠. 논문이 말하는 단서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상대방의 다양성, 여러 앱의 사용, 그리고 거래의 빈도라는 세 가지가 나란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묶어서 보면 진짜 기여라는 말이 어떤 행동에서 나오는지가 보입니다.

다양한 상대방과 거래한다는 건 한두 곳과 짜고 치는 모양새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 앱을 쓴다는 건 특정 창구에서만 실적을 부풀리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 안에서 실제로 움직인다는 뜻이고요. 거래가 꾸준히 이어진다는 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반짝 활동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일종의 생활 기록처럼요. 진짜로 쓰는 사람은 흔적이 넓고, 꾸며낸 활동은 흔적이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빈도만 높다고 진짜는 아니겠지만, 다양성과 폭이 함께 받쳐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여기서는 조금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행동 패턴이 진짜 기여를 보장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교하게 꾸민다면 다양성도 흉내 낼 수 있고, 여러 앱을 오가는 척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이 숫자보다 그 뒤의 구조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일 지표가 아니라 네트워크 전반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결을 함께 본다는 발상 자체가 moving target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지표는 속이기 쉬워도, 여러 차원의 행동을 동시에 꾸미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시스템 관점에서 보면 다음 질문이 바로 생깁니다. 이런 흔적을 로컬에서는 각자 다르게 보는데, 연합된 모델은 어떻게 하나의 기준으로 엮어낼까요. 그 답이 다음 대목의 순서 가르침에 있습니다.

의심스러운 행동은 어떻게 아래로 내려갈까

순위라는 말은 올리는 일만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내리는 일이 절반입니다. 이 시스템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인데, 행동의 진정성을 기준으로 제공자를 줄 세워서 진짜 기여자를 위로 올리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대상은 아래로 내립니다. 말로 하면 한 줄이지만, 운영에서는 이 한 줄이 거버넌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를 믿고 누구에게 기회를 줄지를 정하니까요.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려 보죠. 어느 날 거버넌스 화면에 새로운 순위표가 올라왔다고 합시다. 평소에는 상위권에 있던 어떤 제공자가 이번에는 아래로 밀려났습니다. 담당자는 이유를 묻겠죠. 이때 모델이 점수 하나만 내놓으면 설명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pairwise로 학습된 모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수많은 비교에서 밀렸다는 건, 비슷한 조건의 다른 제공자들과 나란히 놓였을 때 번번이 뒤처졌다는 뜻이니까요. 개별 점수의 변덕이 아니라 비교의 누적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생깁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이 과정이 중앙에서 민감한 거래를 다 들여다보지 않고도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의심스럽다는 판단이 누군가의 직감이 아니라 네트워크 전반에서 학습된 순서에서 나온다면, 결정의 근거를 설명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물론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갔다고 해서 곧바로 부정행위라는 확정은 아니라는 점이죠. 순위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도구이지, 유죄를 선고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저는 그래서 demotion이라는 말을 제재보다 재배치에 가깝게 읽었습니다. 제한된 관심과 자원을 어디에 먼저 쓸지를 정하는 일 말이죠.

상대방 다양성과 앱 사용 폭과 거래 빈도를 흔적으로 엮는 행동 패턴 그림
상대방 다양성과 앱 사용 폭과 거래 빈도를 흔적으로 엮는 행동 패턴 그림

실제 거래 기록으로 시험했다는 말이 왜 중요할까

연구를 읽을 때 저는 방법보다 검증 조건을 먼저 봅니다. 아무리 구조가 아름다워도 가짜 데이터에서만 돌아간다면 운영의 아침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새로운 AI 아키텍처를 볼 때도 benchmark 숫자만 보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무엇이 바뀌었고, 그 변화가 시스템에서 어떤 비용 구조를 만드는지를 함께 봅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이 논문이 실제 블록체인 거래 데이터셋에서 평가했다는 대목은 그냥 덧붙인 말이 아닙니다.

합성 데이터는 연구자에게 친절합니다. 노이즈가 적고, 분포가 깔끔하며, 원하는 현상만 또렷하게 보여주니까요. 반면 실제 거래 기록은 불친절합니다. 특정 시기에 쏠림이 있고, 어떤 앱은 갑자기 뜨고 지며, 때로는 기록 자체가 비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버넌스는 바로 그 불친절한 환경에서 돌아가야 합니다. 밤사이 공시가 늦게 도착하거나 아침에 특정 앱의 거래가 폭증해도 순위 라인은 멈추면 안 되니까요. 저는 그래서 실제 데이터에서의 평가를 연구실 점수 이상으로 평가했습니다. 운영의 소음을 견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은 어디에서 끊을 수 있을까요. 실제 데이터라고 해서 모든 현실을 담은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떤 기간, 어떤 네트워크, 어떤 앱 구성이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 이야기는 숫자를 읽는 대목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합성이 아니라 실제 기록에서 출발했다는 선택은, 이 연구가 논문 안이 아니라 네트워크 위를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태도가 뒤에 나오는 숫자들에 대한 저의 신뢰를 조금 높였습니다.

0.87과 0.92 사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제 숫자를 볼 차례인데, 저는 여기서 조금 의심했습니다. 연합 방식이 NDCG@15에서 대략 0.87을 기록했고, 중앙집중식 기준이 대략 0.92였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0.05 차이로 졌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치르고 무엇을 얻었는지가 함께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NDCG@15라는 말은 상위 15개 순위를 얼마나 잘 맞췄는지를 보는 잣대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거버넌스에서는 상위권이 곧 실행이기 때문에 이 구간을 본 건 잘 고른 선택입니다. 중앙집중식은 모든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서 배우니까 시야가 가장 넓습니다. 반면 연합 방식은 데이터를 모으지 않은 채로 배웁니다. 그런데도 상위 15개에서 0.87이라는 수준에 닿았다는 건, 프라이버시라는 비용을 치르고도 순위 품질이 크게 무너지지 않았다는 뜻이죠. 일반 파일에만 남겼을 때는 17%에 그쳤지만 SOUL.md에 옮겨 적었을 때는 55%까지 올라갔다는 식의 단순 비교가 아니라, 조건이 다른 두 체제를 나란히 놓고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묻는 비교입니다.

반면 이 숫자를 그대로 믿기 전에 조건을 봐야 합니다. 0.87이라는 값은 프라이버시를 지켰다는 조건 아래에서 나온 값이고, 0.92는 데이터를 모았다는 조건 아래에서 나온 값입니다. 조건이 다르면 숫자를 직접 빼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이 차이를 패배가 아니라 거래로 읽었습니다. 데이터를 모으지 않는다는 제약을 받아들였을 때 치르는 대가가 이 정도라는 측정이니까요. 실제 시스템 관점에서 보면 다음 질문이 바로 생깁니다. 이 정도 차이라면, 기관들이 기꺼이 참여할 만큼 명분이 될까요. 저는 된다고 봅니다. 민감한 원본을 넘기지 않고도 중앙에 근접한 순위를 얻을 수 있다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지키며 중앙집중식과 대등한 정확도에 근접하는 성능 개념도
프라이버시를 지키며 중앙집중식과 대등한 정확도에 근접하는 성능 개념도

순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정확도와 짝을 이루는 또 하나의 숫자가 있습니다. Kendall tau가 두 체제에서 모두 대략 0.70으로 일치했다는 대목입니다. 처음 보면 지루한 숫자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이 숫자가 주는 안도감이 큽니다. 순위라는 건 한 번 정하고 끝이 아니라 매번 다시 정해야 하는 일인데, 그때마다 결과가 뒤집히면 아무도 믿지 않으니까요.

Kendall tau는 두 순위표가 얼마나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지를 재는 잣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값이 1에 가까울수록 순서가 일치하고, 0에 가까울수록 무관합니다. 대략 0.70이라는 건 완벽한 일치는 아니지만, 전반적인 줄 세우기가 꽤 안정되게 유지된다는 뜻이죠. 그런데 여기서 진짜로 눈여겨볼 건 절대값보다 일치입니다. 데이터를 모은 체제와 모으지 않은 체제가 같은 수준의 안정성을 보였다는 건, 연합이라는 제약이 순위의 일관성을 깨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좋은데, 이걸 어디에 올릴까요. 운영 화면에 비유해 보죠. 매주 거버넌스 순위표가 갱신되는데, 연합 모델의 표가 중앙 모델의 표만큼 덜 출렁인다면 담당자는 무엇을 믿을까요. 저는 안정성을 믿는 쪽으로 기울 겁니다. 정확도가 조금 낮아도 순서가 안정되면 정책으로 쓸 수 있지만, 정확도가 높아도 매번 뒤집히면 정책으로 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0.70이 완벽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중위권에서는 여전히 엎치락뒤치락이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상위권의 방향이 함께 움직인다는 건, 연합 학습이 네트워크 전체의 문법을 공유했다는 신호처럼 읽힙니다.

648명 승격과 39명 강등이 남기는 질문

마지막 숫자는 성격이 다릅니다. 이 시스템이 실제 데이터 위에서 648개의 고유 제공자에 대한 승격과 39개에 대한 강등이라는 거버넌스 결정을 만들어냈다는 대목입니다. 정확도나 안정성 같은 모델 지표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직접 닿는 결정의 개수이기 때문입니다.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비대칭에 눈이 갔습니다. 올리는 쪽이 훨씬 많고 내리는 쪽은 적죠.

이 비대칭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겉보기에 확산처럼 보이는 사례 대부분은 소수의 봇 계정이 같은 글을 반복해서 올린 경우였다는 식의 섣부른 일반화는 피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승격이 많다고 해서 기준이 헐겁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네트워크 안에 제대로 활동하면서도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기여자가 많았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강등이 적다고 해서 솜방망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아래로 내리는 일은 위로 올리는 일보다 더 무거운 근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39라는 숫자는 그래서 엄격함의 증거로도 읽힙니다.

제가 앞으로 보고 싶은 것은 이 결정들이 다음 분기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입니다. 승격된 제공자들이 실제로 더 활발해졌는지, 강등된 대상자들은 행동을 바꿨는지, 아니면 조용히 떠났는지가 궁금하죠. 순위는 한 번의 판정이 아니라 반복되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순위표가 다음 행동을 바꾸고, 바뀐 행동이 다시 다음 순위를 바꾸는 순환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는 모델이 순서를 제안하고, 사람이 그 순서의 의미를 확인하는 분업이 남는다고 봅니다. 648과 39는 끝이 아니라 그 대화의 첫 문장처럼 느껴집니다.

승격 648과 강등 39라는 거버넌스 결정으로 이어지는 순위 적용 장면
승격 648과 강등 39라는 거버넌스 결정으로 이어지는 순위 적용 장면

순위를 배우는 일이 남기는 감각

처음 DeFiRank를 보면 거대한 거래 표에 순위 모델을 붙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진짜로 달라진 부분은 표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를 모으지 않고도 전체의 눈을 갖는 법을 택했다는 데 있습니다. 각 기관이 자기 화면을 지킨 채로 배우고, 두 개씩 비교하면서 순서를 익히며, 진짜 활동의 결을 위로 올리는 구조 말이죠. 이 흐름을 길게 보면 결국 신뢰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누구의 데이터를 믿을지가 아니라, 어떤 절차로 순서를 믿을지를 묻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연구를 낙관도 비관도 아닌 채로 덮었습니다. 0.87이라는 숫자는 중앙에 못 미치지만, 모으지 않았다는 조건과 함께 읽으면 설득력이 생기고, 0.70이라는 안정성은 화려하지 않지만 운영의 언어로 읽으면 안도감이 됩니다. 648과 39라는 결정은 크고 작음을 떠나 순위라는 형식이 거버넌스의 실행으로 닿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아직 물을 것은 남습니다. 업데이트 공유의 안전선을 어디까지 볼지, 행동 패턴의 흉내 내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중위권의 출렁임을 어떻게 설명할지 같은 것들이죠.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거버넌스를 사람의 회의실에만 두지 않고, 학습된 순서의 형태로 네트워크 위에 올려놓았다는 발상 자체가 다음 질문을 바꿨다는 점입니다. 좋은 심사란 무엇인가에서 좋은 순서를 어떻게 함께 배울 것인가로 말이죠. 저는 그 질문의 이동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분산된 채로 남으면서도 같은 방향을 보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다음에 이 흐름을 다시 만난다면, 저는 정확도표보다 그때의 순위표가 얼마나 덜 흔들렸는지를 먼저 볼 겁니다.

참고 자료

  1. DeFiRank: Federated Pairwise Ranking for Governance in Decentralized Financial Networks · arxiv.org

    리뷰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