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부족한 자리, 숫자를 직접 다루는 모델이 필요한 이유
언어가 수치 기록을 손실 방식으로 줄인 메모에 가깝다는 진단에서 출발해, 재현성과 계보와 교정된 불확실성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Large Quantitative Model이라는 별도 갈래가 왜 거론되는지 따라가는 글입니다.
원문 논문 보기
arXiv에 공개된 논문 Language Is an Insufficient Substrate for Quantitative Reasoning, and Consequential Domains Need Large Quantitative Models(arXiv 2609.12105)는 언어로 학습한 모델이 결과에 책임이 따르는 수치 결정을 어디까지 맡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이 논문이 내세우는 주장은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언어가 수치 기록을 되돌릴 수 없이 줄여서 담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으로 배운 모델만으로는 가격 책정과 자본 배분과 환자 분류와 침입 차단 같은 결정을 감당하기 어렵고, 그래서 수치 기록을 직접 다루는 별도 갈래인 Large Quantitative Model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원문은 제목 아래 링크로 연결해 두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패트릭입니다. 저는 평소에 회의실에서 수치 이야기를 할 때 말의 온도와 표의 온도가 다르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말로는 "거의 다 왔습니다"라고 하는데 표를 펼치면 아직 갈 길이 멀고, 말로는 "문제없습니다"라고 하는데 로그를 열면 밤새 에러가 쌓여 있죠. 그런데 모델 이야기로 넘어오면 순서가 자주 뒤집힙니다. 표와 로그가 먼저인데도 말 잘하는 모델에게 결정을 맡기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먼저 옵니다. 그렇다면 그 기대는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그 질문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따라가 보겠습니다.
왜 숫자를 다루는 자리에서 자꾸 언어를 꺼낼까
이런 기대가 생긴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언어 모델이 보여준 모습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문서를 요약하고, 코드를 고치고, 질문에 답하고, 복잡한 지시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죠. 이렇게 말을 잘 이해하는데 숫자 정도야 알아서 읽지 않겠느냐고요. 그래서 위험 가격을 매기는 자리나, 자본을 나누는 자리나, 응급실에서 환자를 가르는 자리나, 네트워크 침입을 막는 자리에서도 같은 기대가 이어집니다. 언어 쪽 진전이 언젠가 수치 결정의 진전으로 흘러들어오리라는 믿음입니다.
저는 여기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 믿음이 틀렸다고 단정하기 전에,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먼저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워낙 많은 일을 해내다 보니, 언어가 세상을 담는 기본 그릇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죠. 보고서를 읽고, 이메일을 읽고, 회의록을 읽으면 업무가 돌아가니까요. 그런데 보고서는 원본일까요, 아니면 원본을 줄인 메모일까요. 이 구분이 이번 논문의 출발점입니다. 말은 세상을 직접 담지 않고, 사람이 측정한 기록을 다시 말로 옮긴 것을 담습니다. 그 옮김에서 이미 무언가 빠져나갑니다.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월요일 아침 9시, 리스크 팀 회의실에 전주 거래 내역과 가격 변동 표가 올라와 있습니다. 누군가 "지난주 변동성이 컸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닌데, 표가 가진 분 단위 가격과 호가 잔량과 체결 강도는 그 한 문장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말은 회의의 공기를 잡아주지만, 가격은 표에 남아 있죠. 그렇다면 모델이 그 회의록만 잔뜩 읽었다면, 표가 아는 것을 모델도 알까요. 저는 이 질문이 논문 전체를 관통한다고 봅니다.
설명은 기록이 아니라 기록을 줄인 메모에 가깝다
논문이 그리는 그림은 단순합니다. 사람이 숫자를 보고 말로 설명하는 순간, 정보의 모양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측정값에는 단위와 시점과 오차와 결측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설명으로 옮기면 대략적인 흐름과 인상과 판단이 남고, 소수점 아래 디테일과 분포의 모양과 시점 사이의 간격은 옅어집니다. 그래서 설명은 원본 기록과 같은 물건이 아니라, 원본을 사람이 한 차례 줄인 메모에 가깝습니다. 메모가 유용하다는 말과 메모가 원본과 같다는 말은 전혀 다른데, 우리는 가끔 그 둘을 섞어 씁니다.
식당 영수증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영수증에는 메뉴별 금액과 세금과 결제 시각과 승인 번호가 찍혀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어제 저녁 꽤 비쌌어"라고 말하면 그 말에는 합계의 인상만 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영수증의 세금 항목을 복원할 수 있을까요. 복원할 수 없습니다. 말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말에 애초에 그 항목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문이 말하는 손실은 이런 종류의 손실입니다. 사람의 서술은 수치 기록을 손실 방식으로 인코딩하고, 그 손실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죠.

여기서 잠깐, 오해할 만한 지점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언어가 쓸모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어는 의도를 전하고, 배경을 설명하고, 판단을 공유하는 데에 여전히 강합니다. 문제는 자리가 바뀌는 데 있습니다. 인상과 방향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메모만으로 충분한데, 가격과 용량과 생사와 보안을 가르는 자리에서는 메모 너머의 원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구분을 실무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고 봅니다. 말로 된 근거는 설득에는 좋은데, 정산에는 약합니다. 정산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숫자가 몇 개였고, 언제 찍혔고, 어디서 왔는지가 그대로 있어야 하죠.
그렇다면 잃어버린 숫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렇다면 서술에 담기지 않은 숫자는 나중에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논문의 답은 단호합니다. 서술이 담지 않은 것을 나중 단계의 모델이 찾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죠. 아무리 큰 모델을 가져와도, 학습의 출발점에 없던 정보를 추론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영수증 비유로 돌아오면, "꽤 비쌌어"라는 말만 백만 번 모아도 세금 항목의 숫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능력과 빠진 숫자를 복원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흔히 나오는 반문을 저도 떠올렸습니다. 문맥을 많이 모으면 빈칸을 메울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죠. 실제로 언어 모델은 빈칸 메우기에 능합니다. 앞뒤 문장을 보고 자연스러운 말을 골라내는 일은 잘합니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말과 맞는 숫자는 다릅니다. 회의록에 "변동성이 컸다"는 말이 열 번 나오면 모델은 그 표현을 더 유창하게 다루게 되는데, 그 유창함이 분 단위 변동폭의 분포를 복원해 주지는 않습니다. 유창함은 말의 공간에서 자라고, 숫자는 기록의 공간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발점의 손실은 뒤에서 메워지지 않습니다.
병원 야간 당직실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밤 11시 40분, 환자 세 명의 활력 징후가 모니터에 찍힙니다. 혈압과 산소포화도와 맥박이 분 단위로 쌓이죠. 간호 기록에는 "두 번째 환자의 상태가 불안정해 보임"이라고 적힙니다. 그 문장은 다음 근무자에게 주의를 주는 데에 좋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누군가 그 문장만 보고 당시 산소포화도가 몇 초 동안 얼마였는지 복원하려 하면 불가능합니다. 문장이 나쁘서가 아니라 문장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록은 재현을 위한 것이고, 서술은 전달을 위한 것이죠. 그렇다면 결정을 앞둔 모델에게 어느 쪽이 더 필요할까요. 답을 서둘기 전에, 다음 단계를 보겠습니다.
규모를 키우면 메꿔질 거라는 기대가 흔들리는 지점
많은 경우 우리는 막히면 규모를 떠올립니다. 모델을 키우고, 데이터를 늘리고, 계산을 더 쓰면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언어 작업에서는 실제로 그런 장면이 많았기 때문에, 수치 결정에서도 같은 공식이 통하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논문은 이 기대의 방향을 다르게 봅니다. 지금의 병목이 용량의 문제라면 키우는 것이 답인데, 병목이 그릇 자체의 문제라면 키우는 것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도관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수압이 약하면 펌프를 키우면 됩니다. 그런데 관의 입구에 체가 있어서 굵은 자갈만 걸러진다면, 펌프를 키워도 자갈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어오지 않은 자갈을 뒤에서 아무리 세게 흔들어도 생겨나지 않죠. 논문이 말하는 서술의 손실도 이런 체에 가깝습니다. 학습의 입구에서 수치의 디테일이 걸러졌다면, 뒤단의 규모는 말의 유창함을 키울 수는 있어도 걸러진 숫자를 되살리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 한계는 용량이나 규모를 탓하기 전에, 학습에 쓰인 표현 자체의 성질로 읽어야 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예전에 겪은 서빙 장애가 떠올랐습니다. 로그에 남지 않은 요청을 나중에 복원하려던 시도였는데, 아무리 집계를 쪼개도 없는 것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긴 것만 분석할 수 있었죠. 모델 학습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학습 데이터에 서술만 있었다면 모델은 서술의 달인이 될 수 있어도, 서술 너머 기록의 주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 구분이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언어 모델이 워낙 많은 문제를 풀어왔으니까요. 그런데 잘 푸는 문제와 맡기면 안 되는 문제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가려야 합니다. 다음 장면이 그 기준을 가릅니다.
결과를 내는 자리에서는 답이 아니라 과정이 남아야 한다
결과에 책임이 따르는 자리에서는 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격이 왜 그렇게 매겨졌는지, 자본이 왜 그렇게 나뉘었는지, 환자가 왜 먼저 처치받았는지, 침입으로 의심되는 연결이 왜 차단됐는지가 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누군가 "그때 왜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모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라는 대답으로는 부족합니다. 숫자가 몇이었고, 어떤 기록을 봤고,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였는지가 따라와야 하죠. 그래서 이런 자리에서는 재현성과 계보와 교정된 불확실성이 요구됩니다.
재현성부터 풀어 보겠습니다. 같은 기록과 같은 조건을 주면 같은 답이 나와야 한다는 뜻인데, 말이 섞이면 이게 흔들립니다. 같은 표를 보고도 말로 풀어내는 방식이 달라지면 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보는 답에서 원본 기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말합니다. 이 답이 어느 행에서 왔고, 어느 시점의 측정에서 왔고, 어느 로그에서 왔는지가 보여야 합니다. 교정된 불확실성은 "자신 있다"는 말투가 아니라 숫자로 된 정도입니다. 10번 중 몇 번 맞는지, 틀릴 때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가 맞아떨어져야 하죠. 이런 것들은 사후에 덧붙이는 장식이 아니라, 결정을 맡기기 위한 입장권에 가깝습니다.
월말 정산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재무팀이 "이번 달 비용이 늘었습니다"라는 말만 들고 오면 결재가 나지 않습니다. 어느 계정에서, 어느 날짜에, 어느 거래 때문에 늘었는지가 표로 와야 합니다. 틀릴 가능성도 숫자로 와야 하죠. "대충 맞을 겁니다"가 아니라 "과거 같은 조건에서는 이 구간 안에 들었습니다"라는 식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언어 위에 서 있는 답이 이런 정산의 언어를 갖출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에서 논문의 어조가 가장 단호해진다고 느꼈습니다. 서술이라는 그릇 자체가 이런 것들을 처음부터 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언어로 태어난 답이 lineage를 갖지 못하는 이유
이 지점을 조금 더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언어 모델의 답은 문장으로 태어나는데, 문장은 출처를 품는 방식이 느슨하기 때문입니다. 문장 속 숫자 하나가 어느 행에서 왔는지 딱 떨어지게 말하기 어렵고, 설령 출처처럼 보이는 말을 덧붙여도 그 말이 진짜 감사 추적(audit trail)인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말은 매끄럽게 이어지는 데에 능해서, 없는 다리도 그럴듯하게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근거가 있어 보여도, 뒤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록이 아니라 문장이 나옵니다.
건축으로 비유하면 도면과 스케치의 차이입니다. 도면에는 치수와 재료와 하중 계산이 묶여 있어서,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느 치수가 어긋났는지 찾을 수 있습니다. 스케치는 분위기를 전하는 데에 좋습니다. "이쪽을 조금 더 열어둡시다"라는 감각이 살아 있죠. 그런데 스케치만 들고 "이 기둥이 왜 이 굵기입니까"라고 물으면 답이 궁해집니다. 언어 모델의 답이 스케치에 가깝다면, 결정의 자리에서 요구하는 도면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스케치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용도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실무적인 질문이 바로 생깁니다. 그렇다면 말로 된 설명을 아예 버려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읽지 않았습니다. 설명은 여전히 사람 사이의 협업에 필요합니다. 의사에게 "왜 이 환자를 먼저 봅니까"를 설명할 때, 보안팀에게 "왜 이 연결을 끊었습니까"를 설명할 때, 말은 필요합니다. 다만 순서가 바뀌어야 합니다. 말로 결정을 내리고 숫자를 나중에 꿰맞추는 것이 아니라, 숫자와 기록 위에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의 이유를 말로 풀어주는 것이죠. 말은 운전대가 아니라 통역이어야 합니다. 이런 순서의 전환이 다음에 나오는 이름의 뜻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LQM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가리킬까
논문은 이런 요구를 담는 별도 갈래로 Large Quantitative Model, 줄여서 LQM을 제안합니다. 이름만 보면 거대한 언어 모델 옆에 또 하나의 거대한 모델을 세우자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은 바로는 이름의 방점이 크기보다 재료에 찍혀 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크게 학습했느냐보다, 무엇을 먹고 자랐느냐가 먼저라는 것이죠. 사람의 서술이 아니라 수치 기록 자체를 학습의 출발점으로 삼는 갈래라는 뜻입니다.
저희가 새로운 AI 아키텍처를 볼 때도 benchmark 숫자만 보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무엇이 바뀌었고, 그 변화가 시스템에서 어떤 비용 구조를 만드는지를 함께 봅니다. 같은 기준으로 LQM을 보면, 바뀌는 것은 입력의 성격입니다. 분 단위 가격과 호가와 체결, 분 단위 생체 신호와 처방과 검사값, 패킷과 로그와 탐지 기록 같은 것들이 가공되기 전의 모양으로 들어옵니다. 단위와 시점과 결측 표시가 붙은 채로 들어오고, 계산은 그 위에서 벌어집니다. 그래서 출력도 말이 아니라 숫자와 구간과 근거 행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말은 마지막에 사람을 위해 덧붙는 것이죠.

아직은 이름이 가리키는 방향이지, 완제품의 도면은 아닙니다. 논문이 주는 것도 규격서라기보다 갈래의 정의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재현할 수 있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틀릴 확률을 숫자로 말할 수 있는 쪽으로 재료를 바꾸자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갈래가 실제로 쓰이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저는 여기서부터가 진짜 실무 이야기라고 봅니다.
실제로 시스템을 맡긴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화요일 오후 2시, 자본 배분을 앞둔 운용팀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화면에는 종목별 가격과 거래량과 변동 지표가 흐르고, 옆에는 뉴스의 문장들이 뜹니다. 언어 중심의 접근은 뉴스의 문장을 먼저 읽고 숫자를 참고하는 순서입니다. 수치 중심의 접근은 순서를 뒤집습니다. 가격과 물량과 지표의 표를 먼저 계산하고, 뉴스의 문장은 배경과 사건의 맥락으로만 씁니다. 결정의 무게중심이 문장에서 표로 옮겨가는 것이죠. 이 이동이 작아 보이지만, 감사 추적의 가능성은 크게 달라집니다. 답의 뒤에 표의 행 번호가 남기 때문입니다.
서빙 관점에서도 볼 것이 많습니다. 수치 기록을 직접 다루면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결측을 어떻게 표시할지, 늦게 도착한 공시를 어떻게 소급할지, 거래 정지로 비어 있는 구간을 어떻게 둘지가 처음부터 설계에 들어갑니다. 밤사이 공시가 늦게 도착하거나 아침에 특정 종목이 거래 정지에 걸려도 예측 라인은 멈추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수치 직접 학습이라는 말을 연구실 점수 이상으로 평가했습니다. 운영의 아침을 지켜주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말만 매끄러운 모델은 장애 아침에 약하고, 구멍 난 표를 그대로 통과하는 모델은 아침에 강합니다.
보안 현장도 비슷합니다. 새벽 3시 12분, 방화벽 로그에 낯선 외부 주소의 반복 접속이 찍힙니다. 서술형 요약은 "의심스러운 접속이 증가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알림으로는 좋은데, 차단의 근거로는 얇습니다. 어느 주소에서, 어느 포트로, 몇 초 간격으로, 과거 차단 사례와 얼마나 겹치는지가 숫자로 와야 합니다. 오탐의 확률도 숫자로 와야 하죠. 차단이 잘못되면 정상 업무가 멈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서는 모델의 말재주보다, 로그 행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더 믿음직합니다. 답이 아니라 계보가 결정을 지키는 것이죠.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모델의 역할은 어떻게 나뉠까요. 저는 숫자의 계산을 모델이 맡고, 책임의 정의를 사람이 맡는 그림이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어느 정도의 오탐을 감수할지, 틀렸을 때 손실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어느 기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감사로 인정할지는 사람이 정합니다. 모델은 그 테두리 안에서 재현 가능한 답과 교정된 구간을 내놓는 것이죠. 말이 유창한 모델에게 테두리까지 맡기면 나중에 물을 곳이 없어집니다. 테두리는 사람의 일로 남겨두는 것이 맞습니다.
이 주장을 너무 멀리 가져가기 전에 짚을 점
여기까지 읽으면 논문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서술이 손실을 품고 있다는 말과 서술이 쓸모없다는 말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업무는 서술만으로 잘 돕니다. 회의 준비나 문서 정리나 아이디어 다듬기처럼 답의 뒤를 캘 필요가 적은 자리에서는 언어 모델의 도움이 분명합니다. 이 논문이 겨냥하는 것은 그런 자리가 아니라, 틀렸을 때 돈과 건강과 안전으로 바로 이어지는 자리입니다. 적용 범위를 넓게 잡으면 논문이 한 말을 논문이 아닌 말로 바꿔버리게 됩니다.
또 하나, LQM이라는 이름이 모든 해답을 담은 것처럼 들리면 곤란합니다. 이름은 방향을 정해주지만, 결측 처리와 소급 수정과 지표 설계와 평가 방식 같은 숙제는 그대로 남기 때문입니다. 수치 기록을 직접 먹는다고 해서 불확실성이 저절로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구간 예측을 맞추는 훈련과 평가가 따로 필요하고, 과거와 다른 시장이나 다른 병원이나 다른 네트워크에서 어떻게 흔들리는지도 봐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 제안을 완성이 아니라 갈래의 선언으로 읽었습니다. 앞으로 채워야 할 빈칸이 많은 선언이죠. 그 빈칸을 채우는 과정에서 무너질 수도 있고, 다듬어질 수도 있습니다.
반론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서술에 숫자를 빽빽하게 적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죠. 실제로 보고서에 표를 붙이고, 단위와 시점을 적으면 손실은 줄어듭니다. 그런데 그때의 서술은 이미 순수한 말이 아니라, 표를 품은 하이브리드입니다. 논문의 구분으로 말하면 답은 그 하이브리드가 아니라 표 쪽에 기대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말을 잘 다듬으면 된다"는 반론은 논문의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옵니다. 말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죠. 이 구분이 서운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무에서는 오히려 속이 시원한 구분이라고 봅니다. 어디에 힘을 줄지가 분명해지니까요.
숫자를 다루는 모델에게 남는 질문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말을 잘하는 모델에게 숫자를 맡기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제 답은 자리를 가르는 것으로 모입니다. 전달과 설득과 정리에서는 언어 모델의 힘을 빌리면 되고, 정산과 배분과 처치와 차단처럼 뒤를 캘 수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수치 기록 위에서 재현과 계보와 구간을 내놓는 갈래가 필요합니다. 같은 모델에게 두 자리를 모두 맡기기보다, 자리에 맞는 재료를 쓴 모델을 두는 쪽이 안전하다는 것이죠.

제가 앞으로 보고 싶은 것은 LQM이라는 이름 아래에 쌓일 구체적인 약속들입니다. 같은 표를 주면 같은 답을 내놓는지, 답을 누르면 어느 행과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지, 10번 중 몇 번 들어맞는 구간인지가 숫자로 쌓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늦게 도착한 기록과 비어 있는 구간 앞에서도 라인이 멈추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런 약속들이 쌓이기 전에는 어떤 이름도 결정을 맡을 수 없습니다. 이름이 아니라 약속이 결정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남기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회의실에서는 말과 표 중 어느 쪽이 결정을 내리고 있을까요. 말이 표를 대신하고 있다면, 그 말의 뒤에 표의 행 번호를 붙이는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 작은 습관이 모이면, 모델에게 무엇을 맡길지에 대한 답도 달라질 겁니다. 말은 여전히 필요하고, 숫자는 여전히 남아야 하며, 결정은 그 둘 사이에서 자라니까요. 그렇다면 다음 분기에는 어떤 기록을 모델의 밥상에 올리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