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없는 설명까지 찾아 나서는 과학

증거가 쌓이는 동안 가설을 바꾸고 배경지식까지 되돌리며, 언제 멈춰도 타당성을 지키는 개방형 발견 프레임과 가능성 프론티어 탐색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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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ended Scientific Discovery with Possibilistic Reasoning이라는 논문이 arXiv 2610.11289 번호로 공개됐습니다. 원문 링크는 글 제목 아래에 걸어두었습니다. 이 논문은 증거가 쌓이는 동안 가설을 적응적으로 만들고 검증하면서 언제 멈추더라도 통계적 타당성을 유지하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더 좋은 설명까지 탐색 범위에 넣자고 주장합니다.

이 논문을 그냥 넘기지 못한 이유

안녕하세요, 패트릭입니다.

실험실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장면을 떠올리실 겁니다. 아침 회의에서 나온 가설이 오후에는 데이터 때문에 바뀌고, 저녁에는 어제까지 믿던 전제까지 흔들리는 장면 말이죠. 그런데 자동화된 과학 장치를 떠올리면 그림이 묘하게 딱딱해집니다. 정해진 후보 몇 개 중에서 고르고, 정해진 순서대로 검증하고, 정해진 시점에 멈추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니까요. 그렇다면 기계가 하는 과학은 왜 사람의 과학보다 일찍 닫혀버릴까요.

제가 이 논문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바로 그 간극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입니다. 많은 자동 발견 연구가 언어모델에게 가설을 쓰게 하고 실험으로 걸러내는 데 집중했는데, 이 논문은 그 한 단계 앞을 묻습니다. 지금 가진 후보 중에서 제일 나은 것을 고르는 일과, 아직 떠올리지 못한 설명을 계속 찾아내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후자를 하려면 통계적 보장도 다시 설계해야 하고, 모른다는 상태를 다루는 언어도 새로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논문은 귀추적 자율 과학 발견이라는 문제 틀을 세우고, 그 위에 가능성 이론과 탐색 알고리즘을 올립니다. 아래에서는 이 구조가 왜 나왔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를 차례로 풀어보겠습니다.

실험실 자동화가 풀지 못한 진짜 문제

과학 자동화에 대한 기대는 대개 이런 그림에서 시작합니다. 언어모델이 문헌을 읽고 가설을 잔뜩 제안하면, 로봇 실험 장치가 밤새 검증하고, 아침에는 살아남은 가설만 남는 풍경이죠. 이 그림은 절반쯤 맞습니다. 가설을 쓰는 속도는 확실히 빨라졌고, 실험 계획을 짜는 일도 이전보다 쉬워졌으니까요. 그런데 남은 절반이 까다롭습니다. 증거를 보면서 가설을 바꾸는 순간, 통계적 해석이 함께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를 보고 가설을 고른 뒤에 같은 데이터로 그 가설을 검증하면, Peeking이나 cherry-picking 같은 문제가 바로 생깁니다. 우연히 잘 맞아떨어진 설명을 진짜 발견으로 착각하기 쉬워지는 것이죠. 통계학은 이 문제를 오래 다뤄왔고, anytime-valid라는 답도 내놓았습니다. 데이터를 보면서 가설을 바꾸더라도, 언제 분석을 멈추더라도, 거짓 발견을 과장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방법입니다. 표현을 빌리면, 경기를 보면서 베팅을 바꿔도 파산 확률을 일정 아래로 묶어두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이 지적하는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이런 보장이 있어도, 후보 목록 자체가 닫혀 있으면 발견은 일찍 굳어버립니다.

일상적인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국밥집을 찾는다고 해볼까요. 아는 집 세 곳만 놓고 비교하면 오늘 저녁은 해결되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골목까지 탐색 범위에 넣지 않으면 진짜 답은 영영 모릅니다. 자동 발견도 같습니다. 주어진 후보 중에서 승자를 고르는 일은 잘하지만, 후보 바깥에 있는 설명을 떠올리는 일은 구조적으로 빠져 있습니다. 논문은 이 바깥을 문제 안에 포함시킵니다. 지금 가장 좋아 보이는 가설이 나쁜 후보들 중 제일 나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형식화 안에 넣는 것이죠. 이 태도가 뒤에 나오는 모든 장치의 출발점입니다.

가설 카드들이 넓어지는 프론티어 곡선을 따라 배열된 자율 과학 루프를 그린 편집 일러스트
가설 카드들이 넓어지는 프론티어 곡선을 따라 배열된 자율 과학 루프를 그린 편집 일러스트

그렇다면 anytime valid가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 문단에서 anytime-valid를 소개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기존의 anytime-valid 방법은 데이터에 의존해서 가설을 고르는 상황을 다룹니다. 데이터를 보면서 가설을 바꾸더라도 오류율을 묶어두는 수학이 이미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충분하지 않나요. 논문의 답은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데이터 적응성과 개방형 탐색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적응성은 고르는 시점의 문제입니다. 언제 보고 언제 고르더라도 속임수가 없게 만드는 일이죠. 반면 개방형 탐색은 고르는 대상의 문제입니다. 애초에 목록에 없던 설명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찾아낼지를 다룹니다. 전자가 경기 규칙이라면 후자는 선수 명단 바깥에서 새 선수를 데려오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규칙이 공정하다고 해서 스카우트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기존 보장을 그대로 가져오면 묘한 안심이 생깁니다. 숫자는 엄밀해 보이는데, 탐색 범위는 조용히 닫혀 있는 상태 말이죠.

저는 이 구분이 실제 시스템 관점에서 꽤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저희가 새로운 AI 아키텍처를 볼 때도 benchmark 숫자만 보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무엇이 바뀌었고, 그 변화가 시스템에서 어떤 비용 구조를 만드는지를 함께 보는데요. 보장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오류를 막아주는지는 물어야 하고, 동시에 어떤 탐색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물어야 합니다. 이 논문은 두 번째 질문을 수면 위로 올립니다. 언제 멈춰도 타당하다는 성질을 유지하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설명을 향한 문을 열어두는 틀을 만들겠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문을 수학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가능성 이론이 등장합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법

확률과 가능성은 일상 언어에서는 비슷하게 쓰이지만, 이 논문에서는 역할이 분명히 갈립니다. 확률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믿음을 잴 때 편하고, 가능성은 아직 모르는 것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드러낼 때 편합니다. 동전을 천 번 던진 뒤의 믿음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에 대한 무지를 같은 숫자로 다루기 어렵다는 점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전자는 빈도로 다듬을 수 있지만, 후자는 빈도 자체가 없으니까요.

가능성 이론은 바로 그 무지를 다루는 언어입니다. 어떤 가설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면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고, 증거가 쌓이면서 문을 좁혀갑니다. 확률이 각 후보에게 점수를 나눠주는 방식이라면, 가능성은 아직 탈락하지 않은 후보들의 외곽선을 그리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개방형 발견과 궁합이 좋습니다. 모르는 설명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억지로 숫자로 메우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대목은 철학 교과서처럼 들릴 수 있는데, 실제로는 계산 문제와 바로 연결됩니다. 무지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탐색 알고리즘이 어디를 뒤질지가 달라지니까요.)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모른다는 말을 수학 안에 넣으면, 탐색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답은 탐색 범위를 점수가 높은 곳만 파는 일에서, 가능성이 남아 있는 외곽까지 넓히는 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이미 잘 맞는 가설 주변만 맴돌지 않고, 아직 반박되지 않은 낯선 가설에도 예산을 나눠주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사람도 비슷하게 배웁니다. 시험 범위가 정해진 공부는 외운 것을 다듬지만, 연구에 가까운 공부는 범위 바깥을 기웃거립니다. 논문은 이 기웃거림을 형식 안에 넣습니다. 무지를 감추는 대신, 무지가 있는 자리에 탐색 예산을 붙이는 방식으로 말이죠.

닫힌 가설 집합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영역이 있는 개방형 가설 공간을 비교한 도식
닫힌 가설 집합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영역이 있는 개방형 가설 공간을 비교한 도식

배경지식까지 의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논문에서 제가 읽다가 멈칫한 대목은 배경지식에 대한 태도입니다. 보통 과학 자동화는 배경지식을 고정된 바닥으로 둡니다. 물리 법칙이나 교과서 지식은 건드리지 않고, 그 위에서 가설만 갈아끼우는 방식이죠. 그런데 논문은 그 바닥까지 수정 대상에 포함시킵니다. 새로운 증거가 쌓이면 배경으로 깔아둔 가정도 고쳐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과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바닥까지 흔들면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실험실 기억을 떠올리면 이 주장이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측정 장치가 달라지면서 상수로 믿던 값이 바뀌고, 오랜 가정이 근사였음이 드러나는 일은 과학사에서 반복됐으니까요. 집수리에 비유하면, 벽지만 바꾸는 공사와 기초까지 다시 보는 공사의 차이입니다. 벽지만 바꾸면 깔끔하지만, 기초가 기울었을 때는 벽지를 아무리 바꿔도 금이 다시 갑니다. 논문은 후자의 가능성을 틀 안에 넣습니다. 배경을 성역으로 두지 않고, 증거 앞에서 함께 검토되는 층위로 다루는 것이죠.

물론 모든 배경을 매번 의심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계산이 발산하고, 검증도 끝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형식화가 필요합니다. 어떤 가정은 단단히 붙잡고, 어떤 가정은 증거에 따라 풀어주는지를 구분하는 언어 말이죠. 가능성 이론이 여기서 다시 쓰입니다. 배경 가정마다 가능성 정도를 매기고, 증거와 충돌할수록 그 가정을 앞으로 내보내 검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시스템 설계의 오래된 교훈을 떠올렸습니다. 설정 파일과 코드가 뒤엉킨 시스템은 디버깅이 어렵고, 층위가 나뉜 시스템은 어디를 고쳐야 할지가 보입니다. 배경과 가설을 함께 두되 층위를 구분하는 일은, 자동 과학에서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성긴 관측 주변에 겹겹이 쌓인 가능성 윤곽을 보여주는 가능성과 확률 비교 개념도
성긴 관측 주변에 겹겹이 쌓인 가능성 윤곽을 보여주는 가능성과 확률 비교 개념도

발견의 진도를 잴 수 있을까

탐색 이야기를 오래 했으니, 이제 측정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발견이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정확도처럼 정답이 정해진 잣대가 있으면 쉽지만, 개방형 발견에서는 정답 자체가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논문은 abductive utility라는 계산 가능한 잣대를 제안합니다. 설명의 품질을 재는 발견 전용 진도계에 가깝습니다.

귀추라는 말을 풀어보겠습니다. 연역이 규칙에서 사례를 끌어내고, 귀납이 사례에서 규칙을 쌓는다면, 귀추는 관측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가설을 고르는 추론입니다. 감기에 걸린 환자를 보고 바이러스 감염을 떠올리는 의사의 판단이 전형적인 예죠. 증상을 모두 설명하면서도 불필요하게 복잡하지 않은 설명을 고르는 일입니다. abductive utility는 이 감각을 계산으로 옮긴 것입니다. 어떤 가설이 관측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 얼마나 간결하고 일관되는지를 함께 재서, 지금 탐색이 제자리걸음인지 앞으로 가는지를 숫자로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잣대가 왜 필요할까요. 탐색 알고리즘은 목적함수 없이는 표류하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말만으로는 어디를 먼저 뒤져야 할지 정할 수 없습니다. 진도계가 있어야 예산을 어디에 쓸지가 정해지고, 멈춤 여부도 판단할 수 있죠. 등산으로 비유하면, 정상이 어딘지 모르는 산에서 고도계 없이 오르는 일과 고도계 들고 오르는 일의 차이입니다. 정상은 여전히 안 보이지만, 오르고 있는지 내려가고 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보다 그 뒤의 구조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도를 잰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좋은 설명으로 칠지를 미리 선언한다는 뜻이고, 그 선언이 알고리즘 전체의 성격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논문은 그 선언을 숨기지 않고 수식 바깥으로 꺼내 보여줍니다.

모형 아래에서 빼낼 수 있는 기초 블록으로 표현한 수정 가능한 배경 가정 도식
모형 아래에서 빼낼 수 있는 기초 블록으로 표현한 수정 가능한 배경 가정 도식

프론티어를 넓혀가는 탐색은 어떻게 움직일까

이제 알고리즘 차례입니다. 논문은 possibility frontier search라는 탐색 절차를 제안합니다. AASD라는 문제 틀을 푸는 첫 알고리즘이라는 자리인데, 우리말로 풀면 가능성 외곽을 따라가며 찾는 방법 정도가 됩니다. 이름 그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지금 유망해 보이는 중심만 파지 않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가장자리를 계속 넓히면서 찾는 방식이죠.

움직임을 단계로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지금 가진 가설들과 배경 가정들로 가능성 지도를 그립니다. 어디까지 열려 있고, 어디가 이미 닫혔는지를 표시하는 것이죠. 그다음에는 설명 품질 잣대로 각 후보를 재고, 예산을 나눠서 검증합니다. 증거가 들어오면 지도를 다시 그립니다. 어떤 가설은 탈락하고, 어떤 낯선 가설은 새로 들어오며, 필요하면 배경 가정도 검토 대상으로 올라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외곽을 조금씩 밀어내는 것입니다. 개척지 지도와 비슷하죠. 아는 마을 주변만 정밀 측량하지 않고, 지도 바깥의 여백을 조금씩 확인하면서 경계선을 다시 그립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대목을 하나 짚겠습니다. 프론티어를 넓힌다는 말이 무작정 넓게 뒤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산은 유한하고 검증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모든 낯선 가설을 같은 무게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곽 중에서도 설명 품질이 오를 여지가 있는 자리를 우선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엔지니어링 감각이 살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탐색과 활용의 오래된 줄다리기를, 가능성 지도와 진도계라는 두 장치로 풀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넓히는 방향은 가능성 지도가 정하고, 깊게 파는 순서는 설명 품질이 정합니다. 두 신호가 맞물리면서 탐색이 표류하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이죠. 실제 시스템 관점에서 보면 다음 질문이 바로 생깁니다. 이렇게 움직이는 탐색이 통계적 보장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더 갖춰야 할까요.

증거가 쌓이며 가설을 넓히고 가지치는 가능성 프론티어 탐색 과정을 그린 단계도
증거가 쌓이며 가설을 넓히고 가지치는 가능성 프론티어 탐색 과정을 그린 단계도

멈추는 시점이 자유로워지면 무엇이 달라질까

과학은 정해진 회차에 끝나지 않습니다. 예산이 떨어지면 멈추고, 강한 신호가 보이면 일찍 멈추고, 애매하면 길게 갑니다. 그래서 언제 멈춰도 타당하다는 성질은 실무적으로 큽니다. 논문이 내세우는 성질 중 하나도 바로 이 anytime validity입니다. 임의의 중단 시점에서도 통계적 보장이 유지된다는 것이죠.

왜 이게 어려울까요. 멈추는 시점이 데이터에 의존하면, 유리한 순간만 골라 멈추는 편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오른 날만 골라 수익률을 자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anytime-valid 방법은 이런 골라 멈춤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됩니다. 중간에 들여다보고 멈추더라도, 거짓 발견을 부풀리지 않게 묶어두는 것이죠. 논문의 탐색은 이 성질을 개방형 설정까지 끌고 갑니다. 후보가 바뀌고 배경까지 흔들리는 과정에서도, 멈춤 시점에 상관없이 보장이 서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연구 예산은 유한하고, 자동 발견 장치는 밤새 돌다가 아침에 누군가 중간 결과를 보고 멈출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야 한다면 운영이 버겁습니다. 언제 들여다봐도 해석이 유효하다는 것은, 사람의 개입과 자동 탐색을 같은 틀 안에 둘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 성질을 연구실 점수 이상으로 평가했습니다. 운영의 아침을 지켜주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밤사이 들어온 관측 때문에 가설 순위가 바뀌었더라도, 어제 내린 판단이 오늘 거짓말이 되지 않게 붙잡아주는 역할 말이죠. 다만 여기서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anytime validity는 잘못된 확신을 막아주는 울타리지, 좋은 설명을 대신 찾아주지는 않습니다. 울타리가 튼튼하다고 해서 과수원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죠. 설명을 찾는 일은 여전히 프론티어 탐색과 진도계의 몫입니다.

점근적 최적이라는 약속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논문은 점근적으로 엡실론 최적의 abductive utility에 이른다는 이론적 약속을 내놓습니다. 말이 어렵지만, 뜯어보면 담백합니다.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 탐색을 충분히 오래 돌리면,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설명에 거의 근접한다는 뜻입니다. 엡실론은 그 거의의 폭이고, 점근적이라는 말은 시간이 넉넉할 때를 가정한 것이라는 의미죠.

이 약속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저는 반가우면서도 경계하면서 읽었습니다. 반가운 이유는 방향이 맞다는 수학적 확인이기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이 표류하지 않고 좋은 설명 쪽으로 수렴한다는 보증이 있다는 것이죠. 경계한 이유는 조건 때문입니다. 적절한 조건이라는 말 안에는 보통 탐색 예산, 가설 공간의 구조, 관측의 성질 같은 전제가 들어갑니다. 현실의 실험실은 예산이 유한하고, 관측에는 잡음이 있으며, 가설 공간은 논문 속 가정보다 거칠 수 있습니다. 수렴이 보장된 방향과 유한한 시간에 닿을 수 있는 거리는 다른 문제니까요.

여기서는 조금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점근적 최적은 무한한 시간을 쓰는 허가증이 아니라, 알고리즘 설계가 틀어지지 않았다는 검사 증명에 가깝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핸들과 바퀴가 제대로 연결됐다는 확인이지, 오늘 안에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약속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확인은 가볍지 않습니다. 개방형이라는 말이 자칫 무한한 헤맴을 뜻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데, 논문은 그 헤맴에 수렴이라는 끈을 달아둡니다. 조건이 맞을 때 탐색이 어디로 가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죠. 실제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그 조건을 우리 실험실에서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유한한 예산 안에서 중간 점검 신호는 무엇으로 삼을까. 논문이 준 진도계가 바로 그 중간 신호의 후보이고, 이 지점에서 이론과 운영이 맞닿습니다.

타임라인 위에 멈춤 시점과 타당성 보장을 리본으로 표시한 임의 중단 개념 일러스트
타임라인 위에 멈춤 시점과 타당성 보장을 리본으로 표시한 임의 중단 개념 일러스트

실험 결과는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논문은 합성 과제와 현실 과학 발견 과제에서 강한 성능을 보고합니다. 두 종류를 함께 쓴 선택은 읽기 좋습니다. 합성 과제는 구조를 알고 만든 모형 세계라서 알고리즘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분리해서 볼 수 있고, 현실 과제는 잡음과 예외가 있는 바닥에서 버티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모형 비행장에서 이륙을 확인하고, 실제 바람이 부는 들판에서도 날아보이는 순서죠.

그런데 여기서 제가 앞으로 보고 싶은 것은 세부 점수보다 해석의 결입니다. 강한 성능이라는 말이 어떤 비교 위에서 나왔는지, 어떤 예산에서 무엇을 잰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개방형 발견에서는 비교 대상을 잡는 일 자체가 어렵습니다. 닫힌 후보 안에서만 경쟁하는 방법과, 바깥까지 뒤지는 방법을 같은 잣대로 재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예산을 고정하면 탐색 범위가 다른 방법들의 공정성이 흔들리고, 시간을 고정하면 멈춤 규칙의 차이가 섞입니다. 그래서 숫자를 보기 전에 조건을 봐야 합니다. 무엇을 고정했고, 무엇을 자유롭게 뒀으며, 진도는 어떤 잣대로 쟀는지를 말이죠.

이 대목은 논문 바깥의 독자에게는 숙제로 남습니다. 증거 자료만으로는 세부 수치나 과제 이름까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합성과 현실을 함께 밟고 간다는 것은, 수학으로 그린 지도가 모형 세계를 넘어 실제 바닥에서도 작동하는지를 묻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태도를 좋게 봤습니다. 닫힌 세계에서만 통하는 우아한 이론보다, 열린 세계에서 버티는 투박한 절차가 자동 과학에는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반화는 천천히 해야 합니다. 강한 성능이라는 표현은 그 과제들 위에서의 관찰이지, 모든 과학 영역으로의 보증은 아닙니다. 다음 연구에서는 어떤 영역에서 잘 통하고 어디에서 삐걱거리는지가 더 잘게 보고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과학하는 기계에게 남는 질문은 무엇일까

앞에서 미뤄둔 질문으로 돌아올 차례입니다. 기계가 배경까지 의심하면서 탐색 범위를 넓힌다면, 사람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저는 이 논문을 읽으면서 답이 둘로 갈라진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는 기계에게 넘어가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에게 남는 일입니다.

기계에게 넘어가는 일은 끈질긴 탐색입니다. 밤새 가설을 넓히고, 아침에 들어온 관측으로 지도를 다시 그리고, 예산 안에서 검증을 돌리는 일은 자동화에 잘 맞습니다. 특히 언제 멈춰도 타당하다는 성질이 있으면,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 여지가 넓어집니다. 자정에 멈춰도, 일주일 뒤에 멈춰도 해석이 유효하니까요. 반면 사람에게 남는 일은 좋은 설명의 기준을 정하는 일입니다. 무엇을 설명으로 칠지, 어떤 간결함을 선호할지, 어떤 배경은 쉽게 흔들지 않을지를 정하는 일은 가치와 책임이 걸려 있습니다. 진도계가 계산을 대신해도, 그 진도계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남습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저는 가능성 이론이라는 언어가 과학 바깥으로 번지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의료나 정책처럼 증거가 늦게 오고 전제가 자주 바뀌는 영역에서는, 모른다는 상태를 정직하게 표현하는 일이 그 자체로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때도 같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외곽을 넓히는 탐색은 예산을 먹고, 배경을 의심하는 일은 조직의 피로를 부릅니다. 그래서 다음에 볼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운영이 될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 열어두고, 언제 닫으며, 무엇을 기록으로 남길지 말이죠. 기계가 과학을 돕는다는 말은 결국 이런 운영을 차분히 설계한다는 뜻에 가까워 보입니다. 오늘 논문은 그 설계에 필요한 언어와 절차를 한 벌 내놓았습니다. 저는 그 점에서 이 작업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1. Open-ended Scientific Discovery with Possibilistic Reasoning · arxiv.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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